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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찬반 국민투표 실시와 언론검열 (비노큐어→올리버, 1952.06.28) 이미지뷰어 새창

  • 1952년 06월 28일

CONFIDENTIAL CONFIDENTIAL

REPUBLIC OF KOREA

OFFICE OF THE PRESIDENT

June 28, 1952.

Dear Doc:
Today is the big day when the Administration amendment comes up for consideration. Actually, however, things have leveled off since the 23rd, since SMR stays in office until a new president is chosen. If the Assembly hasn’t a quorum, or if it doesn’t pass the amendment, the President’s plan is to take the issue to the people by means of a nation-wide, popular referendum -- with UNCURK invited to supervise. There would be no question of the outcome in that case.
On the 25th, for the first time, I did not accompany the President to a public ceremony. The Assassination Attempt shocked everyone here. I wished I had been there. The president took it very calmly; he has absolutely no physical fear. That evening, Mr. Gaddis and I went back up to Kyung Mu Dai and saw a movie with him and Mme. -- ironically titled “I Want You.” Today during an exclusive interview with Schakne of INS the President promised that a full, open trial will be held and the whole plot to take his life revealed.
Incidentally, that has kept us busy here -- the interviews, I mean. By now, favorable stories by Bill Jordon of AP and Schakne of INS, etc., should have reached the states. These things take time and careful effort, of course, and then I sit in on the interview and try to get an inadvertant statement which might be damaging "off the record" or put into proper context. Then there is a whole flood of releases coming out every day. The issue of censorship has at last been constructively settled; Gaddis and I finally helped in having the more onerous aspects of it removed. Actually, SMR himself had not been fully aware of the extent and practices of it.
Also, by now you will have seen the pictures of the assassination attempt. Bingham of Telenews asked me to rush him the films, so I edited them, wrote the commentary, etc., yesterday and sent it off by plane to Tokyo for his use.
A very busy week in all, as you can see. I haven't had even an evening off now in three weeks. Wish I could have a rest. I haven't raised any question yet with Mme. and SMR on what my plans should be. I personally and confidentially prefer to return to the United States for 4 or 5 months and then return here with the family: (1) The situation militarily remains unsettled still for a family move in the immediate future (2) I could help do the job in the States for a while and at the same time catch my breath. What think you, honestly, on this score? I don't want to broach the subject even with them without your excellent guidance.
Enclosed in here is a $5.00 bill. Mrs. O had sent $15.00, and only ten of it was necessary to pay off Mrs, Lee Ki-bong.

Still full of zip,

올리버 박사에게
오늘은 정부 개정안이 심사에 올라가는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23번째 회기 이후로 사태가 원만해져서, 이승만 대통령은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직무가 유지될 것입니다. 만약 국회가 정족수를 미달하거나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는다면, 대통령은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감시 하에 전국적인 국민투표를 통해서 이 문제를 국민들에게 맡길 계획입니다. 저 경우 결과는 명백할 것입니다.
25일, 처음으로 공식 의전에 대해 대통령과 의견일치를 보지 못했습니다. 암살 시도는 이곳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제가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습니다. 대통령은 그 사건을 매우 조용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는 일체의 심리적 공포가 없습니다. 그날 밤, 개디스(Gaddis)씨와 제가 경무대를 지지하기 위해 방문했고, 이승만 부처와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제목은 “나는 당신을 원한다.(I Want You)”였습니다. 오늘 INS의 샤크네(Schakene)과 독점 인터뷰를 하면서 대통령은 완전히 공개된 재판이 열릴 것이며, 그의 목숨을 노린 음모가 밝혀질 것임을 약속했습니다.
관련 인터뷰로 우리는 최근에 매우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습니다. 아마 지금쯤이면, AP의 조든(Bill Jordon)과 INS의 샤크네(Schakene)가 작성한 긍정적 기사 등이 미국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나는 인터뷰에서 어쩌면 치명적 실수가 될 “오프 더 레코드” 관련된 불필요한 발언 내용을 걸러내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들여서 검토 중에 있습니다. 엄청난 양의 뉴스들이 매일매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검열 관련 사항은 결국 건설적인 방향으로 정착이 되었습니다 ; 개디스와 나는 검열에 걸려 삭제된 내용이 가져다 줄 심각한 점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실제로 이승만 대통령 그 자신이 검열의 진행 상황을 자세히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제서야 당신은 암살 시도와 관련된 문제를 알게 되었을 겁니다. 텔레뉴스(Telenews)의 버빙험(Bingham)은 자신에게 관련 필름을 빨리 전달해달라고 요청했고,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편집하고, 코멘트 등을 어제 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동경에 비행기로 보냈습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정말 바쁜 한주였습니다. 나는 심지어 삼주동안 저녁 시간에 전혀 쉬지 못했습니다. 정말 쉬고 싶습니다. 나는 아직 향후 계획을 어떻게 할지 프란체스카 여사와 이승만 대통령에게 문의하지 않았습니다. 내 개인적으로 그리고 확고하게 4개월 또는 5개월 간 미국으로 돌아가서 있다가 가족과 함께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습니다.
(1) 가까운 미래에 가족이 이동하기에는 군사적 상황이 여전히 불안정합니다.
(2) 잠시 미국에 있는 동안 일을 돕거나, 동시에 나도 쉴 수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당신의 조언 없이는 어떤 선택을 할지 정하지는 않을 겁니다.
5달러 수표를 동봉합니다. O 여사가 15달러를 보냈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 10달러는 이기붕 여사에게 보냈습니다.

여전히 편지가 많습니다. (Still full of zip.)

비노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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