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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전범 간상배에 대한 특별법률 조례’

제1장 民族反進者
제1조 일본 또는 기타 외국과 通課하거나 迎合協調하여 국가와 민족에게 禍害를 끼치거나 독립운동을 방해한 자로서 左의 각 l호에 해탕한 지를 民族反遊者로 함.
(一) 한일보호조약, 한일합병조약 기타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각 조약 또는 문서에 조인한자 및 모의한 자
(二) 일본정부로부터 爵을 受한 자
(三) 일본제국의회의 의원이 되었던 자
(四) 公私施設을 파괴하거나 多衆暴動으로 살인·방화 또는 이를 선동하여 자주독립을 방해한 자
(五) 독립운동에서 변절하고 부일협력한 자
(六) 일정시대에 독립운동자 및 그 가족을 학대·살상·처형한 자 또는 이를 지휘한 자
제2조 전조의 죄는 사형, 무기,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고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하거나 15년 이하의 공민권을 박탈함.
제2장 附日協力者
제3조 일정시대에 일본세력에 아부하여 악질행위로 동포에게 해를 가한 자를 부일협력자로 함
가. 아래의 각호에 해당한 자
(一) 襲爵한 자
(二) 중추원 부의장 고문 및 참의되었던 자
(三) 칙임관 이상의 관리되었던 자
(四) 밀정행위로 독립운동을 저해한 자
(五) 독립을 저해할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의 주요 간부되었던 자
(六) 일본군수공업을 대규모로 경영한 책임자
(七) 개인으로 일본군에 10만원 이상의 현금 또는 통 가치의 군수품을 자진 제공한 자
나. 아래의 각호에 해당한 자 중 罪迹이 현저한 자
(一) 府·道이상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
(二) 주임관 이상의 관리되었던 자 또는 軍·警部에 判任官이상 내지 고등계에 임직하였던 자
(三) 日本國策을 추진할 목적으로 설립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각 단체 및 언론 기관의 지도적 간부 되었던 자
제4조 전조의 죄는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0년 이하의 공민권을 정지함. 단 죄상에 의하여 그 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몰수할 수 있음.
제3장 好商輩
제5조 1945년(4278년) 8월 15일 이후 악질적으로 경제를 교란하며 국민생활을 곤란케 한 자로서 아래의 각 호에 해당한 자를 간상배로 함.
(一) 일본 또는 일인의 재산을 불법으로 이용하여 謀利한 자
(二) 관헌 기타 권력을 이용하여 부정하게 謀利한 자
(三) 배급물자로 부정하게 謀利한 자
(四) 밀항으로 부정하게 폭리한 자
제6조 전조의 죄는 5년 이하의 정역 또는 謀利 금액의 倍額이상의 벌금에 처함.
제4장 가감형
제7조 본 법에 규정한 범죄자로서 개전의 정상이 현저하거나 또는 자수한 자는 그 형을 경감 또는 면제할 수 있음.
제8조 타인을 모함할 목적으로 본법에 규정한 범죄에 관하여 허위의 신고를 한 자는 당해 신고내용에 해당한 범죄규정으로 처단함.
제5장 형법수속
제9조 본법을 시행하기 위하여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재판소를 설치함. 특별조시위원회의 위원과 특별재판소의 판사 및 검사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서 선거함.
제10조 본법에 규정한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본 법령 공포일로부터 기산하여 3년을 경과함으로써 완성함 단 제 1조 제4항의 죄는 此限에 不在함.
부칙
제11조 민족반역자·부일협력자로서 조직하는 단체는 이를 일체 금지함.
제12조 본법은 공포일로부터 시행함.
식민잔재에 대한 인적 청산의 과제는 미군정의 현상유지정책에 의하여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일제시기에 관리를 지낸 자들이 모두 처벌되어야 하는 친일파·민족반역자라고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친일파·민족반역자의 명확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이 인적 청산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해방공간에서 현실적인 헤게모니의 장악을 위한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 인적 청산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실현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이승만과 한민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치세력들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었을지라도 친일파 청산을 필수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註01
註01
허종, 2003 『반민특위의 조직과 활동: 친일파 청산 그 좌절의 역사』 선인, 5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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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에 의해 정국의 주도권이 확립된 이후 한민당의 건의에 의해 남조선과도입법의원설치를 공표하자 1946년 10월 7일 중도좌우세력이 참여한 좌우합작위원회는 친일파·민족반역자를 처리할 조례를 입법기구에 제안하여 심리, 결정하여 실시하게 한다는 등의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하고 이를 군정장관에게 건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원한 입법의원은 개원 직후부터 의원자격 문제에서 친일파 문제가 제기되었다. 친일파 처리 문제는 정부수립 후로 미루지는 군정청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1947년 1월 9일, 친일파·민족반역자처리를 위한 법안을 제정하기 위한 특별법기초위원회가 설치, 구성되었고, 1947년 3월 13일 제 30차 회의에 초안이 상정되었다. 초안은 수정안, 재수정안으로 변경되면서 약 4개월간의 격론을 거친 후에 1947년 7월 2일 최종 통과되었다.
이 특별조례는 각 적용대상자들에 대하여 형사처벌을 할 것을 정하고 있으므로, 형사법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다만 처벌대상이 되는 각 행위들이 모두 조례 제정 이전에 행해진 행위들이므로 일종의 형사소급입법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이 점에서 본다면, 형사법의 일반원칙인 소급입법금지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었으나, 해방이라는 혁명적 상황 하에서 과거청산을 위한 특별입법(ad hoc legislation)이었으므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형사법으로서의 성격상 처벌대상이 되는 행위가 명확해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서도 상당히 구체적이며 특정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또 다른 특징적인 것은 특별조사위원회와 특별재판소를 두도록 한 점이다. 조사위원회위원과 판사 및 검사를 과도입법의원에서 선거하도록 한 것은 기존의 경찰, 사법 그리고 행정의 영역이 모두 식민시대의 관리들로 장악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칫 이들에 의해 친일파처리가 왜독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註02
註02
허종, 위의 책, 1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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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조례는 제 1조 4항을 제외하고는 그 적용의 시한으로 3년의 공소시효를 두었는데, 이 규정 또한 초안에는 규정되어 있지 않았다가 수정 및 재수정을 거치면서 삽입된 것이었다. 친일반민족행위의 처벌에 공소시효를 둔다는 것 자체가 처벌의 가능성을 회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는 것으로 수정 및 재수정의 과정에서 친일행위자로 의심을 받는 입법의원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하였음을 보여준다.
개별적인 규정으로서 민족반역자, 부일협력자, 간상배 등의 각 규정들은 초안의 내용에 비하여 상당히 범위가 축소되었고 그 처벌도 약화되었다. 이것은 초안의 내용이 그 적용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구체적이었고 그 처벌도 너무 가혹하여 민족반역자의 처벌보다는 사회혼란을 불러일으킬 뿐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여 수정 및 재수정을 거쳐 대폭 축소된 것이었다. 특히 수정 및 재수정 과정에서 친일행위자로 의심받는 자들이 참여하여 규정을 축소함으로써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처럼 특별조례가 초안에 비해 범주가 축소되고 처벌규정도 약화된 채 제정된 것은 친일파, 민족반역자의 처리를 반대한 의원들의 강력한 반발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특히 민선의원들은 초기에 특별법 기초위원회에 참여를 기피하는 등 친일파처벌에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입장이었지만, 법안이 구체화되자 법안마련에 적극 참여해 법안의 약화를 주도하였다. 또한 이 법률의 적용대상이던 친일파들이 법 제정을 반대하는 집회개최와 신문광고, 그리고 의원들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특별조례 제정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특별조례 제정을 주도한 중도 좌우 세력이 수적으로 열세였기 때문에 민선의원들이 중심이 된 극우세력들의 공세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註03
註03
허종, 위의 책,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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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01
허종, 2003 『반민특위의 조직과 활동: 친일파 청산 그 좌절의 역사』 선인, 52~78쪽.
註02
허종, 위의 책, 102쪽.
註03
허종, 위의 책,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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